상황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사울이 왕이 된 지 2년 되었을 때 3,000명의 상비군을 조직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게바의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하자 블레셋은 병거 3만, 마병 6천, 보병이 해변의 모래처럼 많은 대군을 이끌고 올라왔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굴과 바위틈에 숨거나 요단강을 건너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전쟁은 언제나 군사의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셨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었습니다. 비록 현실은 불리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보다 상황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당신은 무엇을 더 크게 보고 있는가? 상황입니까? 하나님입니까?" 1. 상황보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블레셋과 비교하면 이스라엘은 군사도 적고 무기도 부족했습니다. 그들이 승리할 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정한 기한이 다 되어가도록 오지 않자 백성들은 계속 흩어졌고, 사울은 조급해져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사울은 세 가지 잘못을 범했습니다. 1) 하나님보다 사람을 붙잡기 위한 수단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사가 백성들의 마음을 붙드는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2) 제사장의 권한을 침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의 질서를 세우셨는데 사울은 자신의 위치를 넘어섰습니다. 3) 하나님의 때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사무엘이 도착했지만 그는 조급함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책망을 들었지만 잘못을 회개하기는커녕, 사무엘과 백성과 블레셋, 심지어 하나님까지 탓하며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변명을 받지 않으셨고 결국 왕권까지 빼앗기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는 변명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변명이 아니라 회개입니다. 실수했을 때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2. 상황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해야 합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번제를 드린 행위 자체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무시한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무엘의 인도를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거역하는 것을 매우 엄중하게 다룹니다. 미리암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오늘날도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도 순종할 수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며 자신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3. 상황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 크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울은 "내가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 속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했습니다. 블레셋은 병거 3만과 수많은 군사를 보유했지만, 이스라엘은 겨우 600명만 남았고 사울과 요나단 외에는 칼과 창조차 없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런 상황을 만납니다. 방법도 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사울은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 방법을 선택했고, 요나단은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삼상 14장에서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다"라고 고백하며 믿음으로 나아갔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통해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셨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은 같은 상황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상황을 크게 보았고, 요나단은 하나님을 크게 보았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환경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도 위기의 순간을 만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는 누구를 더 크게 보고 있느냐? 상황이냐? 하나님이냐?" 불안한 현실보다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는 사람은 상황에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단에게 승리를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믿음의 승리를 허락하실 것입니다.3일 전by 민준기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사울은 하나님께 선택받아 기름부음을 받고 백성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사사의 권위를 넘겨주지 않았기에 아직 왕권은 완전히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백성들이 사울의 왕권을 인정하게 되자, 이제 사무엘은 통치권을 사울에게 넘겨주며 은퇴를 선언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백성들 앞에서 전한 고별 메시지입니다. 사무엘은 사사와 제사장, 선지자로 평생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 이유는 3절 말씀처럼 그가 늘 ‘여호와 앞에서’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코람 데오(Coram Deo)', 곧 하나님의 임재와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무엘은 평생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1. 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은 사사와 선지자, 제사장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에게 뇌물을 받았느냐"고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당신은 우리를 속이지도 압제하지도 않았습니다"라고 그의 결백을 증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쉽게 부정직해집니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면 자연스럽게 정직한 삶을 살게 됩니다. 김천의 한 설렁탕집 주인은 재료가 좋지 않자 프림을 타라는 권유를 거절하고, 준비한 설렁탕을 모두 버린 뒤 하루 동안 영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정직함은 결국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끝까지 붙드시며 복을 주십니다. 거짓이 자연스러운 시대일수록 하나님은 정직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갈 때 정직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정직을 떠난 진리와 신앙은 모두 위선에 불과합니다. 2. 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죄가 깨달아지는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구원하셨음을 상기시킵니다. 사사시대의 역사는 범죄와 회개, 구원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왕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끝내 사람 왕을 요구했고, 그것이 하나님을 버린 죄였음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기 위해 건기인 밀 추수 때 우뢰와 비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자신들이 왕을 구한 것이 큰 죄였음을 인정하며 회개합니다. 죄를 죄로 깨닫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상처를 느껴야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죄를 깨달아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시는 분은 아니지만,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죄 가운데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22절은 오늘 본문의 가장 큰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붙드시는 이유는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깨달은 사람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숨기면 하나님과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실 때 그것이 은혜임을 알고 회개하여 죄 사함과 자유를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맡은 사명은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사사의 직분에서는 물러나지만, 선지자의 사명은 계속 감당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것을 죄로 여기겠다고 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계속 가르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왕이 세워질수록 더욱 필요한 사람은 선지자였습니다. 왕은 나라를 다스리지만 선지자는 왕과 백성이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도록 붙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권력은 내려놓았지만 사명은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높은 자리를 가진 사람보다 끝까지 사명을 붙드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은퇴는 있어도 사명의 은퇴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기도하고 섬기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화려한 인생보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인생을 기뻐하십니다. 사무엘처럼 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정직하게 살고, 죄를 깨달을 때마다 회개하며,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1주 전by 민준기첫 열매, 부담입니까 기쁨입니까?
오늘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3:9-10)고 말씀하시며, 첫 열매를 드리는 자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감사절을 지켜도 복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감사 자체를 부담스러워합니다.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은 절기와 제사를 오히려 싫어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사1:14-15). 예배는 드리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감사하지만 마음은 아까워하고, 손은 드리지만 중심은 닫혀 있는 감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얼마나 경험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은 무너진 신앙이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보여줍니다. 1. 첫 열매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입니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후, 성벽보다 더 심각하게 무너진 백성들의 신앙을 회복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과 함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단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첫 열매가 하나님의 것인 이유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시24:1). 우리의 생명과 물질, 시간과 자녀까지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또 첫 열매가 하나님의 것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장자를 살려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았습니다. 또 첫 열매가 하나님의 것인 이유는 첫 열매가 전체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롬11:16). 첫 시간을 드리면 하루를 맡기는 것이고, 첫 물질을 드리면 삶 전체를 맡기는 것입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 제 삶은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쉽게 "내가 벌었고 내가 이루었다"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재물 얻을 능력까지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말씀합니다(신8:18). 숨 쉬는 것도, 일할 힘도, 건강도, 기회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그저 돈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네 삶의 첫 자리인가?” 그것을 질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첫 열매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신앙입니다.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처음 난 것을 드리게 하신 이유는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장자를 드린다는 것은 "이 생명은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생명입니다"라는 고백이며, 첫 열매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기념비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병원에 있는 사람도 있고, 장례식장에 있는 사람도 있으며, 경제적으로 무너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게 은혜 아닙니까? 그러니 첫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성막을 지을 때 백성들은 예물이 남을 정도로 자원하여 드렸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유월절의 은혜와, 홍해의 기적과,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생하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같은 교회 안에서도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늘 부담스러워합니다. 그 차이는 하나님을 얼마나 경험했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유는 단지 돈이 많아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3. 첫 열매는 축복의 문을 여는 신앙입니다. 첫 단추가 중요하듯 신앙도 시작이 중요합니다. 맥추절은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리며 남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절기입니다. 시작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마지막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처음 작은 열매에도 감사하는 사람은 나중에 큰 열매 앞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추수의 끝이 아니라 시작부터 감사하게 하십니다. 미국 청교도들도 풍성해서가 아니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시작부터 믿음으로 감사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첫 열매가 부담이냐, 기쁨이냐?" 이것은 헌금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기억하며,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첫 열매가 기쁨이 되길 축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이 내 인생의 후원자이심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살리시고 인도하셨음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2주 전by 민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