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옳습니다
3일 전by 민준기이런 교회, 어떻습니까?
1주 전by 민준기이유 없는 고난을 받을 때
2주 전by 민준기골리앗을 만난 것이 축복이었다
3주 전by 민준기하나님의 선택에 담긴 지혜
4주 전by 민준기명목상의 신앙을 넘어 참된 순종으로
본문에는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고 사울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11절)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폐위시키셨습니다. 후회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판단을 잘못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사울의 불순종을 안타까워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말씀에는 순종하지 못했던 명목상의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명목상의 신앙을 넘어 참된 순종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을 남김없이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3절). 이는 갑작스러운 명령이 아니라 출애굽 이후 약 400년 동안 회개의 기회를 주신 뒤 내리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었습니다. '진멸'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렘'인데,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그 어떤 것도 남겨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리겠다는 명목으로 좋은 소와 양을 남겨놓은 것입니다(9절). 그는 "순종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고 있었습니다(15절). 우리도 순종하지 못할 때마다 나름의 이유와 핑계를 찾습니다. "부득이했습니다" "저로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는 것입니다. 사울은 결국 자기 생각을 앞세운 결과 교만에 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는데도 자신을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12절). 말씀보다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영광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선택하거나 판단하는 대상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기준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생각과 계산을 말씀 아래 내려놓고 말씀이 말씀되게 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2.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울은 전쟁 중에도 하나님의 명령보다 좋은 소와 양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죽이기 아까운 겁니다. 결국 들을 것을 듣지 못했고, 순종해야 할 말씀에도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빼앗기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다른 것에 정신을 빼앗기면 공부를 못하고, 일하는 사람이 다른 곳에 마음을 두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님은 평생 유학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버드대학교 채플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나도 이 대학 못 나왔다"라는 마음을 주셨고, 그 순간 자신의 마음이 학위와 명예에 빼앗겨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세상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다시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예수님께 마음을 집중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3. 겸손으로 순종하면 끝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22절,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순종이라는 히브리어 '샤마'는 '듣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참된 순종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말씀 앞에서 순종하기보다 계산하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겸손했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작게 여기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오늘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과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만으로는 끝까지 순종할 수 없습니다. 사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울과 달리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우리의 불순종을 대신 담당하시고 완전한 순종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순종의 전형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들고 참된 순종을 결단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새 마음을 주시고 순종할 힘을 더해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명목상의 신앙을 벗어나야 합니다. 참으로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끝까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1개월 전by 민준기두려움을 이기는 믿음
이스라엘을 가장 오랫동안 괴롭힌 민족 가운데 하나가 블레셋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블레셋은 막강한 병력과 철기 무기를 갖추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제대로 된 무기를 가진 사람이 사울과 요나단뿐일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두려워 숨거나 도망했고, 남은 군사는 겨우 6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두려워할 때 단 두 사람,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소년만이 블레셋 진영으로 향했습니다. 같은 상황을 보았지만 믿음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신앙의 위기 앞에서 어떻게 두려움을 이기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두려움 앞에서는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불순종하든지’, ‘두려울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순종하든지’ 입니다. 사울은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달랐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고 무기 든 소년과 함께 블레셋 진영으로 올라갑니다. 그것은 무모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이렇게 말합니다. 6절,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요나단은 블레셋을 "할례 받지 않은 자"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이 없는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므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결국 요나단이 믿음으로 나아가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블레셋 진영에 큰 혼란이 일어나고 땅이 진동하며, 적군은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역시 위기를 만나면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사탄은 순종하면 손해 본다고 속입니다. 예배와 십일조, 거룩한 삶을 두려움 때문에 미루게 만듭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일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2.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염려를 맡겨야 합니다. 요나단의 믿음으로 시작된 싸움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승리였습니다. 23절,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하나님은 블레셋 진영을 혼란케 하셨고, 포로였던 히브리 사람들과 도망쳤던 이스라엘 군사들까지 돌아오게 하셔서 함께 싸우게 하셨습니다(20-22절).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음식을 먹지 말라"고 맹세했습니다(24절). 백성들은 굶주린 채 싸우느라 지쳤고 전투력은 오히려 약해졌습니다. 요나단은 그 명령을 듣지 못한 채 꿀을 먹었고 즉시 기운을 회복했습니다(27절). 그러면서 말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29절) 사울은 하나님이 이미 일하고 계심에도 여전히 염려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로 맡긴다고 하면서도 계속 염려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벧전5:7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하나님께 맡겼다면 더 이상 염려가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반드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3. 하나님의 말씀으로 상황을 바르게 분별해야 합니다. 사울의 경솔한 맹세는 결국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 백성들이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피째 고기를 먹는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32절). 2) 아무것도 모르고 꿀을 먹은 요나단이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39절). 사울의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믿음과 함께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입다의 경솔한 서원 역시 같은 교훈을 줍니다. 감정과 조급함으로 내린 결정은 큰 비극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판단과 말과 결정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다스릴 때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요나단처럼 담대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사울처럼 두려워하고 염려하며 내 생각을 앞세울 때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라는 가장 큰 두려움 앞에서도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참된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끝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어떤 위기 앞에서도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크게 바라보십시오. 염려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상황보다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승리하신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신앙의 위기를 승리로 바꾸어 주실 줄 믿습니다.1개월 전by 민준기상황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사울이 왕이 된 지 2년 되었을 때 3,000명의 상비군을 조직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게바의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하자 블레셋은 병거 3만, 마병 6천, 보병이 해변의 모래처럼 많은 대군을 이끌고 올라왔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굴과 바위틈에 숨거나 요단강을 건너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전쟁은 언제나 군사의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셨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었습니다. 비록 현실은 불리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보다 상황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당신은 무엇을 더 크게 보고 있는가? 상황입니까? 하나님입니까?" 1. 상황보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블레셋과 비교하면 이스라엘은 군사도 적고 무기도 부족했습니다. 그들이 승리할 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정한 기한이 다 되어가도록 오지 않자 백성들은 계속 흩어졌고, 사울은 조급해져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사울은 세 가지 잘못을 범했습니다. 1) 하나님보다 사람을 붙잡기 위한 수단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사가 백성들의 마음을 붙드는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2) 제사장의 권한을 침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의 질서를 세우셨는데 사울은 자신의 위치를 넘어섰습니다. 3) 하나님의 때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사무엘이 도착했지만 그는 조급함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책망을 들었지만 잘못을 회개하기는커녕, 사무엘과 백성과 블레셋, 심지어 하나님까지 탓하며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변명을 받지 않으셨고 결국 왕권까지 빼앗기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는 변명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변명이 아니라 회개입니다. 실수했을 때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2. 상황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해야 합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번제를 드린 행위 자체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무시한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무엘의 인도를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거역하는 것을 매우 엄중하게 다룹니다. 미리암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오늘날도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도 순종할 수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며 자신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3. 상황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 크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울은 "내가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 속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했습니다. 블레셋은 병거 3만과 수많은 군사를 보유했지만, 이스라엘은 겨우 600명만 남았고 사울과 요나단 외에는 칼과 창조차 없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런 상황을 만납니다. 방법도 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사울은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 방법을 선택했고, 요나단은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삼상 14장에서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다"라고 고백하며 믿음으로 나아갔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통해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셨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은 같은 상황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상황을 크게 보았고, 요나단은 하나님을 크게 보았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환경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도 위기의 순간을 만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는 누구를 더 크게 보고 있느냐? 상황이냐? 하나님이냐?" 불안한 현실보다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는 사람은 상황에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단에게 승리를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믿음의 승리를 허락하실 것입니다.1개월 전by 민준기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사울은 하나님께 선택받아 기름부음을 받고 백성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사사의 권위를 넘겨주지 않았기에 아직 왕권은 완전히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백성들이 사울의 왕권을 인정하게 되자, 이제 사무엘은 통치권을 사울에게 넘겨주며 은퇴를 선언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백성들 앞에서 전한 고별 메시지입니다. 사무엘은 사사와 제사장, 선지자로 평생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 이유는 3절 말씀처럼 그가 늘 ‘여호와 앞에서’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코람 데오(Coram Deo)', 곧 하나님의 임재와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무엘은 평생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1. 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은 사사와 선지자, 제사장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에게 뇌물을 받았느냐"고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당신은 우리를 속이지도 압제하지도 않았습니다"라고 그의 결백을 증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쉽게 부정직해집니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면 자연스럽게 정직한 삶을 살게 됩니다. 김천의 한 설렁탕집 주인은 재료가 좋지 않자 프림을 타라는 권유를 거절하고, 준비한 설렁탕을 모두 버린 뒤 하루 동안 영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정직함은 결국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끝까지 붙드시며 복을 주십니다. 거짓이 자연스러운 시대일수록 하나님은 정직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갈 때 정직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정직을 떠난 진리와 신앙은 모두 위선에 불과합니다. 2. 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죄가 깨달아지는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구원하셨음을 상기시킵니다. 사사시대의 역사는 범죄와 회개, 구원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왕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끝내 사람 왕을 요구했고, 그것이 하나님을 버린 죄였음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기 위해 건기인 밀 추수 때 우뢰와 비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자신들이 왕을 구한 것이 큰 죄였음을 인정하며 회개합니다. 죄를 죄로 깨닫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상처를 느껴야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죄를 깨달아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시는 분은 아니지만,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죄 가운데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22절은 오늘 본문의 가장 큰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붙드시는 이유는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깨달은 사람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숨기면 하나님과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실 때 그것이 은혜임을 알고 회개하여 죄 사함과 자유를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맡은 사명은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사사의 직분에서는 물러나지만, 선지자의 사명은 계속 감당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것을 죄로 여기겠다고 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계속 가르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왕이 세워질수록 더욱 필요한 사람은 선지자였습니다. 왕은 나라를 다스리지만 선지자는 왕과 백성이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도록 붙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권력은 내려놓았지만 사명은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높은 자리를 가진 사람보다 끝까지 사명을 붙드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은퇴는 있어도 사명의 은퇴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기도하고 섬기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화려한 인생보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인생을 기뻐하십니다. 사무엘처럼 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정직하게 살고, 죄를 깨달을 때마다 회개하며,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1개월 전by 민준기첫 열매, 부담입니까 기쁨입니까?
오늘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3:9-10)고 말씀하시며, 첫 열매를 드리는 자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감사절을 지켜도 복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감사 자체를 부담스러워합니다.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은 절기와 제사를 오히려 싫어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사1:14-15). 예배는 드리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감사하지만 마음은 아까워하고, 손은 드리지만 중심은 닫혀 있는 감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얼마나 경험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은 무너진 신앙이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보여줍니다. 1. 첫 열매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입니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후, 성벽보다 더 심각하게 무너진 백성들의 신앙을 회복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과 함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단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첫 열매가 하나님의 것인 이유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시24:1). 우리의 생명과 물질, 시간과 자녀까지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또 첫 열매가 하나님의 것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장자를 살려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았습니다. 또 첫 열매가 하나님의 것인 이유는 첫 열매가 전체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롬11:16). 첫 시간을 드리면 하루를 맡기는 것이고, 첫 물질을 드리면 삶 전체를 맡기는 것입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 제 삶은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쉽게 "내가 벌었고 내가 이루었다"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재물 얻을 능력까지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말씀합니다(신8:18). 숨 쉬는 것도, 일할 힘도, 건강도, 기회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그저 돈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네 삶의 첫 자리인가?” 그것을 질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첫 열매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신앙입니다.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처음 난 것을 드리게 하신 이유는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장자를 드린다는 것은 "이 생명은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생명입니다"라는 고백이며, 첫 열매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기념비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병원에 있는 사람도 있고, 장례식장에 있는 사람도 있으며, 경제적으로 무너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게 은혜 아닙니까? 그러니 첫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성막을 지을 때 백성들은 예물이 남을 정도로 자원하여 드렸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유월절의 은혜와, 홍해의 기적과,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생하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같은 교회 안에서도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늘 부담스러워합니다. 그 차이는 하나님을 얼마나 경험했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유는 단지 돈이 많아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3. 첫 열매는 축복의 문을 여는 신앙입니다. 첫 단추가 중요하듯 신앙도 시작이 중요합니다. 맥추절은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리며 남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절기입니다. 시작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마지막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처음 작은 열매에도 감사하는 사람은 나중에 큰 열매 앞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추수의 끝이 아니라 시작부터 감사하게 하십니다. 미국 청교도들도 풍성해서가 아니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시작부터 믿음으로 감사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첫 열매가 부담이냐, 기쁨이냐?" 이것은 헌금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기억하며,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첫 열매가 기쁨이 되길 축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이 내 인생의 후원자이심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살리시고 인도하셨음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2개월 전by 민준기